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레올로고스 왕조 (문단 편집) === [[마누일 2세]](1391~1425) === 부친 요안니스 5세 사망 후 황위를 물려받은 마누일 2세는 바예지트 1세의 중재를 받아들여 요안니스 7세가 셀렘브리아 영지로 복귀하게 하였다. 그리고 마누일이 후계를 남기지 못할 경우 그가 잇도록 합의하였다. 하지만 얼마 후 마누일이 아들 [[요안니스 8세]]를 낳자, 요안니스 7세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 그렇게 해서 황실간의 분열을 비로소 종식할 수 있었지만, 오스만 술탄국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다. 바예지트 1세는 봉신인 그를 몇 차례 소환했으나 불응하자 1394년부터 1402년까지 8년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다. 마누일 2세는 난국을 해결하고자 1399년 요안니스 7세에게 도시를 맡기고 십자군 결성을 이루기 위해 서유럽으로 떠났다. 그는 베네치아, 파리, 런던을 순차적으로 방문하고 1402년에 귀환하였다. 그의 방문은 동로마 제국과 서유럽 사이의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데는 큰 기여를 했으나, 원래 목적이었던 군사 원조 면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402년, [[바예지트 1세]]가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에게 참패하여 포로로 잡혔다. 투르크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를 풀고 물러났고, 동로마 제국은 테살로니카와 트라키아 서부의 해안지대를 수복했으며, 오스만 술탄국에게 바치던 조공도 중단하였다. 요안니스 7세는 섭정 지위에서 물러나 테살로니키 일대를 영지로 삼아 '테살로니키의 황제'를 칭했고, 아들 안드로니코스 5세는 공동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1407년, 안드로니코스가 사망하자 비탄에 빠진 요안니스도 이듬해 죽으며 2대에 걸친 테살리아 황제국은 소멸되었다. 이후 마누일 2세의 아들 안드로니코스가 테살로니카 총독으로 부임했다. 한편 마누일 2세는 국사를 아들 [[요안니스 8세]]에 맡기고 종교와 문학에 심취했다. 그러던 1421년, [[요안니스 8세]]는 [[무라트 2세]]와 무스타파의 내전에 개입해 무스타파를 지지했다. 무라트 2세는 무스타파가 이끄는 반란을 진압한 뒤 쳐들어와서 1422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공격했으며 1423년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유린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함락당하지 않았으나 마누일과 요안니스 8세는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해야 했다. 이후 마누일은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자로 지내다 1425년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